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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

                                                      97학년도 제2학년 제2조
최영숙. 오현주. 오경임. 김은숙. 황준석. 윤정수

<삼국지(三國志)>는 중국(中國)의 삼국시대(三國時代) 역사(歷史)를 기록(記錄)한 책(冊)으로, 중국(中國) 정사(正史)의 하나입니다.  <삼국지(三國志)>는 위서(魏書)가 서른 권, 촉서(蜀書)가 열다섯 권, 오서(誤書)가 스무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은 서진의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에 속해 있는 것으로 고대동방(古代東方)의 여러 나라와 겨레에 관한 기록(記錄)입니다. 
위서(魏書)는 총 서른 권 가운데 기(紀)가 네 권, 열전(列傳)이 스물여섯 권인데 동이전(東夷傳)은 제일 마지막 권 30의 오환(烏丸)․선비(鮮卑) 다음에 실려 있습니다.  동이전(東夷傳)을 구성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의존한 것은 사찬(私纂) 어환(魚煥)의 <위략(魏略)>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이전(東夷傳)의 구성도 위략(魏略)과 거의 같습니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은 서(序)․부여(夫餘)․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예(濊)․한(韓)․왜인(倭人)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서(序)에서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주변 겨레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를 간단히 적고 있습니다.  부여(夫餘)에는 부여의 위치, 영역, 풍습, 산물들에 관한 자세한 기록과 함께 순장(徇葬) 풍습에 대해 기록이 있습니다.  고구려(高句麗)에는 관제, 제천행사, 혼인풍속들을 적고 중국과 고구려의 관계를 후한 때부터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초기 고구려 사회에 대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記錄)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동옥저(東沃沮)에는 고조선(古朝鮮)에 복속(服屬)했던 사실, 한군현과의 관계, 고구려에 복속한 사실들과 풍속을 적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읍루(挹婁) 겨레의 습속을 적고, 책화(責禍) 풍습과 과하마(果下馬)로 유명한 예(濊) 겨레의 삶의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한(韓)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삼한소국(三韓小國)의 명칭을 열거하고 신지(臣智), 읍차(邑次)와 같은 소국 수장(首長)들의 명칭과 한군현과의 관계에서 생겨 난 칭호들을 싣고 있습니다.  왜인(倭人)에는 대방군(帶方郡)에서 야마다이국<사마대국(邪馬臺國)>에 이르는 길을 적고, 당시 왜인(倭人)들의 정치와 사회의 모습을 적었습니다.
이처럼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은 우리 고대 겨레들이 살았던 모습과 풍속외에도 여러 가지 사실들을 제법 상세히 전한다는 것에서 우리 고대사(古代史)의 연구에 중요한 문헌입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예의 무천(舞天), 삼한의 오월제(五月祭)․시월제(十月祭)와 같은 농경의례(農耕儀禮) 모습과 정치조직의 발전정도를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이전(東夷傳)은 어디까지나 다른 겨레인 중국인의 눈에 비친 모습과 특징에 관한 기록이라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이전(東夷傳)에 묘사된 사회상은 대략 삼세기 무렵이지만, 때로 훨씬 이전의 것도 포함되어 있어 모두를 같은 시기의 것들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은 동방 겨레들에 관한 최고(最古)의 기록으로서 동방 고대사의 연구에 유일한 사료(史料)일 것입니다.

 

 


부여전
부여(夫餘). 재장성지북(在長城之北). 거현도천리(去玄菟千里). 남여고구려(南與高句麗). 동여읍루(東與挹婁). 서여선비접(西與鮮卑接). 북유약수(北有弱水). 방가이천리(方可二千里). 호팔만(戶八萬). 기민토저(其民土著). 유궁실창고뢰옥(有宮室創庫牢獄).다산릉광택(多山陵廣澤). 어동이지역최평창(於東夷之域最平敞). 토지의오곡(土地宜五穀). 불생오과(不生五果). 기인추대(其人麤大). 성강용근후(性强勇謹厚). 불구초(不寇鈔). 국유군왕(國有君王). 개이육축명관(皆以六畜名官).유마가(有馬加)․우가(牛加)․저가(豬加)․구가(狗加)․견사(犬使)․견사자․사자(犬使者․使者). 읍락유호민(邑落有豪民). 민하호(民下戶). 개위노복(皆爲奴僕). 제가별주사출도(諸加別主四出道). 대자주수천가(大者主數千家). 소자수백가(小者數百家). 식음개용조두(食飮皆用俎豆). 회동배작세작(會同拜爵洗爵). 읍양승강(揖讓升降). 이은정월제천(以殷正月祭天). 국중대회(國中大會). 연일음식가무(連日飮食歌舞). 명왈영고(名曰迎鼓). 어시시단형옥(於是時斷刑獄). 해인도(解人徒).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 백포대몌포고(白布大袂袍袴). 리혁탑(履革鞜). 출국즉상증수금계(出國則尙繒繡錦罽). 대인가호리유백흑초지구(大人加狐狸狖白黑貂之裘). 이금은식모(以金銀飾冒). 역인전사개궤(譯人傳辭皆跪). 수거지절어(手據地竊語). 용형엄급(用刑嚴急). 살인자사(殺人者死). 몰기가인노비(沒其家人奴婢). 절도일책십이(竊盜一責十二). 남녀음(男女淫). 부인투(婦人妒). 개살지(皆殺之). 우증투(尤憎妒). 이살(已殺). 시지국남산상(尸之國南山上). 지부란(至腐爛). 여가욕득(女家欲得). 수우마내여지(輸牛馬乃與之). 형사처수(兄死妻嫂). 여흉노동속(與匈奴同俗). 기국선양생(其國善養牲). 출명마역옥초유미주(出名馬亦玉貂狖美珠). 주대자여산조(珠大者如酸棗). 이궁시도모위병(以弓矢刀矛爲兵). 가가자유개장(家家自有鎧仗). 국지기로자설(國之耆老自說). 고지망인(古之亡人). 작성책개원(作城柵皆員). 유사뢰옥(有似牢獄). 행도주야(行道晝夜). 무로유개가(無老幼皆歌). 통일성불절(通日聲不絶). 유군사역제천(有軍事亦祭天). 살우관제(殺牛觀祭). 이점길흉(以占吉凶). 제해자위흉(蹄解者爲凶). 합자위길(合者爲吉). 유적제가자전(有敵諸加自戰). 하호구담양(下戶俱擔糧). 식음지(食飮之). 기사하월개용빙(其死夏月皆用冰). 살인순장(殺人徇葬). 다자백수(多者百數). 후장유관무곽(厚葬有棺無槨).  위략왈(魏略曰). 기속정상오월(其俗亭喪五月). 이구위영(以久爲榮). 기제망자(其祭亡者). 유생유숙(有生有熟). 상주불욕속(喪主不欲速). 이타인강지(而他人强之). 상쟁인(常諍引). 이차위절(以此爲節). 기거상남여개순백(其居喪男女皆純白). 부인자포면의(婦人者布面衣). 거환패(去環佩). 대체여중국상방불야(大體與中國相彷彿也).  부여본속현도(夫餘本屬玄菟). 한말공손도웅장해동(漢末公孫度雄張海東). 위복외이(威服外夷). 부여왕위구태(夫餘王尉仇台). 경속요동(更屬遼東). 시구려(時句麗). 선비강(善卑彊). 도이부여재이로지간(度以夫餘在二虜之間). 처이종녀(妻以宗女). 위구태사(尉仇台死). 간위거립(簡位居立). 무적자(無適子). 유얼자마여(有孼子麻余) 위거사(位居死) 제가공립마여(諸加共立麻余) 우가형자명위거(牛加兄子名位居) 위견사(爲犬使) 경재선시(輕財善施) 국인부지(國人附之) 세세유사예경도공헌(歲歲遺使詣京都貢獻) 정시중(正始中) 유주자사모구검토구려(幽州刺史母丘儉討句麗) 유현토태수왕기예부여(遺玄菟太守王頎詣夫餘) 위거유견가교영공군량(位居遺犬加郊迎供軍糧) 계부우가유이심(季父牛加有二心) 위거살계부부자(位居殺季父父子) 적몰재물(籍沒財物) 유사부렴송관(遺使簿斂送官) 구부여속(舊夫餘俗) 수한부조(水旱不調) 오곡불숙(五穀不熟) 첩귀구어왕(輒歸咎於王) 혹언당역(或言當易) 혹언당살(或言當殺) 마여사(麻余死) 기자의려연육세(其子依慮年六歲) 입이위왕(立以爲王) 한시부여왕장용옥갑(漢時夫餘王葬用玉匣) 상예이부현도군(常豫以付玄菟郡) 왕사즉영취이장(王死則迎取以葬) 공손연주(公孫淵誅) 현도고유유옥갑일구(玄菟庫猶有玉匣一具) 금부여고유옥벽(今夫餘庫有玉璧)․찬수대지물(瓚數代之物) 전세이위보(傳世以爲寶) 기로언선대지소사야(耆老言先代之所賜也)   위략왈(魏略曰) 기국은부(其國殷富) 자선세이래(自先世以來) 미상파양(未嘗破壤)  기인문언(其印文言)『예왕지인(濊王之印)』 국유고성명예성(國有故城名濊城) 개본예맥지지(蓋本濊貊之地) 이부여왕기중(而夫餘王其中) 자위(自謂)『망인(亡人)』 억유(抑有)(사(似))[이(以)]야(也)
위략왈(魏略曰) 구지우언(舊志又言) 석북방유고난지국자(昔北方有高亂之國者) 기왕자시비유신(其王者侍婢有身) 왕욕살지(王欲殺之) 비운(婢云) : 『유기여계자(有氣如雞子) 래하아(來下我) 고유신(故有身)』 후생자(後生子) 왕읍지어혼중(王揖之於溷中) 저이록허지(猪以㖨噓之) 사지마한(徙至馬閑) 마이기허지(馬以氣噓之) 불사(不死) 왕의이위천자야(王疑以爲天子也) 내령기모수축지(乃令其母收畜之) 명왈동명(名曰東明) 상령목마(常令牧馬) 동명선사(東明善射) 왕공탈기국야(王恐奪其國也) 욕살지(欲殺之) 동명주(東明走) 남지시엄수(南至施掩水) 이궁격수(以弓擊水) 어별부위교(魚鼈浮爲橋) 동명득도(東明得度) 어별내해산(魚鼈乃解散) 추병불득도(追兵不得渡) 동명인도왕부여지지(東明因都王夫餘之地)

부여전
부여는 장성(만리장성)의 북쪽에 있다.  그 부여는 현토군에서 천리쯤 떨어져 있다.  남쪽에 고구려, 동쪽에 읍루, 서쪽에 선비와 인접한다.  북쪽은 약수가 흐른다.  땅은 사방으로 이천리이고 호수는 팔만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농사짓고 정착해 산다.  궁실․창고․뢰옥을 두고 있다.  ... 산과 언덕과 넓은 못이 많다. 동이 지역에서 가장 평탄하고 넓은 곳이다.  토질은 오곡이 자라기에 알맞다.  그러나 오과는 자라지 못한다.  ... 그 나라 사람들은 몸집이 크고, 성품이 굳세고 용감하고 부지런하고 후덕하다.  그래서 도둑질과 노략질이 없다.  ... 나라에는 군왕이 있다.  모두 여섯가지 가축의 이름을 관직명으로 한다.  마가․우가․저가․구가․견사․견사자는 심부름꾼(신하)이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다.  백성은 하호라 하고, 모두 노복이다.  여러 가들은 따로 사출도를 주관한다.  큰 곳은 수천의 가를 관장하고 작더라도 수백 가를 관장한다.  ... 음식을 먹을 때 모두 나무 그릇을 쓴다.  .. 회합에서는 술에 절하고 잔을 씻으며, 읍을 하고 사양하며 (술잔을) 오르내렸다. ... 은나라의 정월에는 하늘에 제를 지내는데 나라의 가장 큰 모임으로 날마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  이를 영고라 하였다.  이때는 간옥을 그치고 죄수를 풀어 주었다.  ... 나라 안에서는 흰 색 옷을 숭상한다.  흰 베로 큰 소매의 도포와 바지를 만들어 입었고, 가죽신을 신었다.  나라 밖에서는 비단에 수를 놓은 옷이나 털옷을 입기도 했다.  대인은 여우․살쾡이․원숭이․희고 검은 담비의 가죽을 덧입기도 했다.  금은으로 모자에 장식을 했다.  역인은 말을 전할 때 모두 무릅을 꿇고 손으로 땅을 짚고 조용히 말했다.  ... 형벌은 엄급(혹독)하다.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또한 그 집안 사람들을 모두 노비로 삼는다.  도둑질한 자는 그것의 열 두배를 갚아야 한다.  남녀간 음란한 짓을 한 자들은 사현에 처하고 투기한 부인도 사형에 처한다.  부인이 투기하는 것을 더 미워해서 죽인 후에는 그 시체를 남산 위에 던져두고 썩어 문드러지도록 버려둔다.  친정에서 시체를 거두려 할 때는 소와 말을 바쳐야만 한다.  형이 죽으며 형수를 아내로 삼는다.  이것은 흉노들과 다를바 없는 풍습이다.  ..  그 나라 사람들은 짐승을 잘 길렀다.  명마와 주옥, 담비와 원숭이 가죽, 미주가 난다.  큰 구슬은 대추알 크기만 하다.  활과 화살, 갈과 창을 병기로 한다.  집집마다 스스로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있다.  그 나라의 늙은이들은 옛날 자신들이 망명해 왔다고 말한다.  성책은 모두 둥글게 되어 감옥처럼 보인다.  길을 가면서 늙은이․젊은이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불러 하루종일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 전쟁이 일어나면 또한 제를 올린다.  소를 잡아 그 발굽을 살펴서 길흉을 점치는데,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붙으면 길하다고 믿는다.  적이 침입하면 가들은 모두 모여 스스로 전쟁에 참전하고 하호들은 군사들의 식량을 만들어 바친다.  ... 여름철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넣어 장사지내고, 사람을 죽여 순장한다.  많을 때는 백여명이나 된다. 장사를 후하게 지낼 때 관을 쓰고 곽을 쓰지 않는다.
위략왈, 그나라 습속에는 초상을 다섯달을 지낸다.  오래 될 수록 영화롭게 여긴다.  그 죽은이에게 제를 올릴 때는 날 것, 익힌 것 가리지 않고 쓴다.  상주는 상치르는 일을 빨리 하지 않으려 하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빨리 상을 치르라고 강요한다.  이로써 언제나 실랑이를 벌이는 것으로 예절을 삼는다.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예의이다.)  상중의 남녀 모두 순백의 옷을 입는다.  상주의 부인이 되는 이는 베로 만든 면의(먼 길 갈때 쓰는 얼굴 가리개)를 쓴다.  반지나 패물을 지니지 않는다.  (이것은) 대체로 중국과 더불어 서로 비슷하거나 같다.
부여는 본래 현도군에 속했다.  한말에 공손도(중국인 장군)가 해동에서 세력을 키워서 위엄으로 외이들을 복속 시켰다.  부여왕 위구태는 소속을 바꾸어 요동군에 복속했다.  이때 고구려와 선비가 강성하여, 공손도는 부여가 이들 두 나라 사이에 끼여 있음을 보고 일족의 딸을 그 부여왕에게 시집보내었다.  위구태왕이 죽고 간위거가 왕이 되었다.  간위거는 적자가 없고 서얼인 마여가 있었다.  위거가 죽고 제가들이 함께 마여를 왕으로 옹립했다.  우가의 벼슬에 있는 이의 형의 아들 이름도 위거인데, 견사가 되어서 재물을 아끼지 않고 많이 베풀어서 나라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해마다 위 도읍에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정시(위 제왕의 연호 : 240-248년) 해 중순에 유쥬자사인 모구검이고구려를 토벌하면서 현도태수 왕기를 부여에 보냈다.  위거는 견사를 보내어서 교외에서 왕기를 맞게하고,  군량을 보내었다.  계부 우가가 딴 맘을 먹자, 계부 부자를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깡그리 몰수하여, 조사관을 보내어 장부에 기록하여 관에 보내었다. 
옛부여의 풍속에는 장마와 가뭄이 연이어서 오곡이 익지 않을 때는 왕에게 그 허물을 물어서 혹은 왕을 바꾸거나 혹은 왕을 죽였다.  마여가 죽자 그의 아들인 여섯살박이 의려를 왕으로 삼았다.
한나라때 부여왕의  장례에는 옥갑을 썼다.  항상 현도군에 미리 가져다 두었다가 왕이 죽으면 그것을 가져다 장레를 치렀다.  공손연이 주살된 뒤에도 현도군에 창고에는 옥갑이 한구 남아 있었다.  지금 부여의 창고에는 옥으로된 벽, 규, 찬과 같은 여러가지 대를 이어 전해오는 물건이 있어 이를 보물로 여긴다.  노인들은 이를 선대의 왕께서 내리신 것(하사한 것)이라 한다. 
위략왈 그 나라는 매우 부강하여 선대로부터 일찌기 적에게 파괴된 적이 없다. 
그 도장에 「예왕지인」이란 글이 있다.  나라의 옛성의 이름이 있었는데 예성이 었다.  아마도 본래 예맥의 땅인 것을 부여가 그 가운데서 왕으로 추대되었기에 자신들을 스스로 「망인(망명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위략왈 옛 기록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옛 북방에 고리이란 나라가 있었다.  그 왕의 시녀가 임신을 하여서 왕이 그녀를 죽이려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 “달걀과 같은 크기의 기운이 내게 내려와서 임신하였다”고 했다. 
뒤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왕은 그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렸지만, 돼지가 입김을 불어 넣어 아이가 죽지 않았다.  마굿간에 버렸으나, 말이 입김을 불어 넣어 아이가 죽지 않았다.  왕은 천제의 아들로 여겨, 그 어미에게 거두어 기르게 하고 이름을 동명이라했다.  항상 말을 기르게 하였다.  동명은 활을 잘 쏘았다.  왕은 자신의 나라를 빼앗길까봐 동명을 죽이려 했다.  동명은 남으로 달아나 시업수에 이르렀다.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물을 건넌뒤 물고기와 자라는 흩어져 버려서 추적하던 군사는 물을 건너지 못했다.  그리해서 동명은 부여 지역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다
<고구려전>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의 거리)에 있다. 남쪽에는 조선, 예맥과 동쪽에는 옥저와 북쪽에는 부여와 접하고 있다. 환도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였고, 사방의 넓이가 가히 이천리 정도 되고, 호수는 삼만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는 많으나 들판과 못은 없다. 산과 골짜기를 따라서 거처하고 산골짜기 물을 먹는다. 좋은 밭이 없어서 비록 힘껏 농사를 지어도 입과 배를 실하게 하는데는 부족했다. 그들의 습속은 음식을 아끼고 집을 치장하기를 좋아한다. 거처하는 곳의 좌우에 큰 집을 짓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또 신성스러운 별과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사람들의 성격은 흉악하고 급하며 도둑질과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그 나라는 왕이 있고 관직은 상가, 대노,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승, 사자, 조의, 선인이 있으며 (신분의) 높고 낮음이 각각 등급이 있다.
동이의 옛 말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인데 언어와 모든 행사들은 부여와 같은 것이 많으나 그들의 기질과 의복은 다른 점이 있다.
본래 (고구려는) 다섯 부족이 있는데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가 있다. 본래 연노부에서 왕이 되었으나 점점 (세력이) 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가 그것을 대신한다.
한나라 때에는 복과 피리와 부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하사하였는데 항상 현도부에 나아가 조복과 의책을 받았고 (현도군에 있는) 고구려 수령이 그 명부를 주관하였다. 후에 점점 교만하고 방자하여 다시 현도군에 나아가지 않아서 동쪽의 경계에 작은 성을 쌓아서 그 안에 조의와 의책을 두어 해마다 와서 그것을 가지게 하였다. 지금 오랑캐(고구려)는 이 성을 책구루라 말하는 것과 같다. 구루는 고구려 사람이 성을 부르는 말이다.
그들이 관직을 두 때는 대로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았고, 패자가 있으며 대로를 두지 않았다. 왕의 종족으로서 대가는 모두 고추가로 일컫느다. 연노부는 본래 국주였으므로 지금 비록 와이 되지 않더라도 적통이 맞는 대인은 고추가로 일컬어질 수 있었다. 또한 종묘를 세우고 신성스러운 별과 토지의 신과 곡식의 칭호를 더하였다. 모든 대가 또한 스스로 사자, 조의, 선인을 두었고 그 이름은 모두 왕에게 올렸다. (사자, 조의, 선인은 중국의) 경이나 대부의 가신과 같다. 같이 모일 때 앉거나 서거나 왕가의 사자나, 조의, 선인과 열을 같이 할 수 없었다.
그 나라의 대가는 농사를 짓지 않았기에 그냥 앉아서 먹는 사람이 만여구이다. 하호가 멀리서 쌀과 양식, 고기, 소금을 운반하여서 그들에게 공급한다.
그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나라의 마을들은 밤이 되면 남녀들이 무리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논다. 큰 창고가 없고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부경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깨끗하고 갈무리하고 스스로 술빚는 것을 좋아한다. 꿇어앉아 절할 때는 한쪽 다리를 펴니 부여와 같지 않다. 길을 걸을 때는 모두 달음박질하듯 걷는다.
시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나라의 큰 행사는 말하기를 동맹이라 하낟. 그들의 공적인 모임의 의복은 모두 비단으로 수놓았고 금은으로 장식하였다. 대가 주부는 먼저 책을 쓰는데 중국의 책과 비슷하나 뒤가 없다. 그 소가는 절풍을 쓰는데 모양이 고깔과 같다.
그 나라 동쪽에는 큰 굴이 있는데 이름하여 수혈이라 한다. 시월에 나라의 큰 행사는 수신을 맞이하고 돌아와 나라의 동쪽 위에 그것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무로 만든 수신을 신의 자리에 둔다.
감옥이 없는데 죄가 있으면 제가들이 평가하고 의논하여 곧 그를 죽이고 처자를 빼앗아 노비로 삼는다.
그들의 풍속은 혼인을 할 때 말로써 이미 정하고 여자집은 큰 집 뒤에 작은 집을 짓느데 이르하여 서옥이라 한다. 사위가 날이 저물면 여자집밖에 이르러 스스로 이름을 말하고 꿇어앉아 절하며 여자와 자는 것을 이룰 수 있기를 빈다. 만일 이런 것을 두세번 하면 여자의 부모가 들어주며 작은 집안에 잘 수 있도록 해주는데 돈과 비단을 곁에 가지런히 둔다. 아들을 낳아 장성해지면 부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풍속은 음란하다. 남녀가 이미 결혼은 하였으며 곧 조금씩 죽을 때 보낼 옷을 만들고 후하게 장사를 지낸다. 금, 은, 재물과 동은 죽을 때 보는는 데 다쓴다.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나란히 심는다.
그 나라 말은 모두가 작아서 산을 오르는데 편리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힘이 세고 전투에 익숙하여서 옥저와 동예가 모두 속해졌다.
또 소수맥이 있는데, 고구려는 큰 강을 의지하여 나라를 세워 거처한다. 서안평현 북쪽에 작은 강이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유입된다. 고구려인의 별종이 작은 강에 의지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말하기를 소수맥이라 한다. (거기는) 좋은 활이 나기 때문에 소위 맥궁이라고도 한다.
왕마의 초년에 고구려 군사를 뽑아내어 오랑캐를 치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이에 행하지 않으므로 그곳에 강압적으로 보냈더니, 모두 변방을 나가 달아난 뒤 (중국의 군현을) 노략질하였다. 요서의 대윤전담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도리어 그들에게) 살해되었다. (이에 중국의) 주․군․현이 그 허물을 고구려 제후 도에게 돌렸다. 엄우가 말을 아뢰었다.
“맥인이 법을 어긴 것은 그 죄가 도에게서 미롯된 것이 아니므로 그를 안심시키고 위로해야함이 마땅합니다. 지금 외람하여 큰 죄를 씌우게 되면 그들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왕망은 말을 듣지 아니하고 우에게 (고구려를) 치도록 조서를 내렸다. 우는 (고)구려 제후 도를 만나자고 꾀어내어 그가 도착하자 목을 베어 그 머리를 보내어 장안에 이르게 했다. 왕망은 크게 기뻐하면서 천하에 펴 알리어 고구려한 이름을 고쳐 하구려라 이르게 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후국이 되었는데 안 공무제 8년에 고구려왕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며서부터 비로서 왕이라 일컬음을 보인다.
상제와 안계 사이에 (고)구려왕 궁이 자주 요동을 침입하였으므로 다시 현도에 속하게 되었다. 요동태수 채풍과 현도태수 요광은 궁이 두 군(고을)을 해칠 것이라 생각하여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였다. 궁이 거짓으로 대화하기를 청하자 두 군은 진격하지 않았다. (그 틈을 이용하여) 궁은 몰래 군을 파견하여 현도를 공격하여 후성을 불사르고 요수에 침입하여 관리와 백성들을 죽였다. 그 뒤 궁(고구려 태조왕)이 다시 요동을 침범하자 채풍이 가벼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추격하였다가 패하여 죽었다.
궁이 죽고 아들 백고가 왕으로 세워졌다. 순제와 환제의 사이에 다시 요동을 범하여 신안과 거향을 도둑질하고도 서안평을 공격하여 도중에서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노략질로 얻었다. 영제의 건영 2년에 현도태수 경림이 그들을 토벌하여 수백명의 머리를 베고, 수백명을 사로잡았다. (이에) 백고가 항복하여 요동에 복속하였다.
가평 가운데 백고는 현도군에 속하기를 빌었다. 공순도의 세력이 해동에 웅거하자 대가, 우거와 주부 선인 등을 파견해 공순도를 도와 도적을 격파였다.
백고가 죽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발기, 작은 아들은 이이모였다. 발기는 아버지를 닯지 않아서 국이들과 함께 이이모를 옹립하여 왕이 되게 했다. 백고 때부터 자주 요동을 노략질하였고 또 망한 오랑캐 5백여호를 받아들였다. 건안 연간에 공순강이 군대를 보내어 그것(고구려)을 공격하여 그 나라를 격파하였고 성읍과 촌락을 불태웠다. 발기는 형이면서도 왕의 위치를 얻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의 가와 함께 각기 하호 3만여명을 이끌고 나아가 강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에 살았다. 항복했던 호족(오랑캐)이 이이모를 다시 배반하므로 이이모는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오늘날 있는 곳이 이곳이다. 발기는 드디어 요동으로 건너가고, 있던 아들은 고구려에 계속 머물렀는데 지금의 고추가 교위거가 그 사람이다. 그 후 다시 현도를 공격함으로 현도와 요동이 함께 반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이이모는 아들이 없어 관노부의 여자와 사통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위궁이다. 이이모가 죽자 즉위하여 왕이 되니 지금의 고구려 왕이 바로 그 사람이다. (위궁이) 증조가 이름이 궁이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사물을 보았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이 (궁을) 미워하였다. (궁이) 장성새지자 과연 흉악하여 자주 (남의 나라를) 침략하다가 나라가 잔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그므이 왕(위왕)도 태어나자마자 그 역시 눈을 뜨고 사람을 보았다. 구려에서는 서로 닮은 것을 위라고 부르는데 그의 증조부와 닮았기 때문에 위궁이란 이름을 지었다. 위궁은 용감하고 힘이 세었으며 말을 잘 타고 사냥에서 활을 잘 쏘았다.
경초 2년 태수 사마선황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손연은 토벌하니 위궁이 주부와 대가를 파견 군사 수천명을 거느리고 (사마선왕의) 군대를 도왔다.
정시 3년에 (위)궁이 서안평을 노략질하였다. (정시)5년에는 유주자사 관구검에게 격파되었는데 그 때의 사실은 검의 열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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